자화상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분명 언젠가는 내 그림이 팔릴 것이다.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살다 보면 촛불을 끌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리 소화기를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연스러운 삶이란 싹을 틔우는 것이거든. 사람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편지 중반까지의 그는 자살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문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우울과 자살에서 멀어 보였던 고흐가 결국 그런 선택에 이르렀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감히 알 수 없다.
나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삐뚤어지고 적의에 차서 성을 잘 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자살하는 것보다 유쾌한 삶을 사는 게 더 낫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 이상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성공에도 행복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그림과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믿었던 것이 옳았음을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결국 그의 믿음과 말은 현실이 되었다.
고흐의 삶은 열정적이고 낭만적이었지만, 동시에 어두웠다. 하지만 그는 그 어두운 하늘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났다.
편지 후반
고흐는 고갱을 만났다. 편지를 읽다 보면 고흐가 고갱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그리고 고갱이 고흐를 떠났을 때 보인 행동은 고갱을 향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고갱을 대하는 태도와 그를 생각하는 마음 속에는 애정뿐 아니라 열등감, 배신감, 믿음과 같은 여러 감정이 함께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다.
고흐는 정말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그다지 착하지 않았고, 그가 착하다고 믿었던 것들 또한 언제나 착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착함’을 믿었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고흐의 그림은 종종 그의 불행했던 삶과 함께 이야기되며, 그 불행까지도 작품의 예술성과 연결되곤 한다.
물론 고흐의 삶이 행복했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같은 작품은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조금 더 행복했다면 우리는 더 많은 훌륭한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고흐가 고독과 정신적 고통, 불행 속에서 그림을 그린 화가로만 기억되기보다, 순수하고 밝게 빛나는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알려지기를 바란다.


